미스터 터너

윌리엄 터너의 생애를 담백하게 그려낸 영화

마이크 리 티모시 스폴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영화다. 그 외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볼 가능성이 적을 듯 싶다. 마이크 리 감독 영화를 좋아하거나 티모시 스폴의 연기를 보려고 한다면 모를까. 아마 그림 같은 영화 보고자 하는 이들도 어쩌면 이 영화를 좋아할 것 같다.

 

윌리엄 터너는 위대한 화가로 불리는 것은 맞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건 정말 걸작이다와 이건 도대체 뭘 그린 거냐, 이 양극단에 놓여 있다. 왜 그런지는 그의 그림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림의 명쾌함과 상당히 다르게 그려냈다.

 

영화에도 나오는데, 그의 마지막 유언은 "빛은 신이다."였다. 정확히는 The Sun is God. 이걸 애써 종교나 기독교로 차원을 해석하려는 사람도 있긴 하던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보다는 그에게 빛이 세상의 전부였고 그는 그것을 그리는 데 온 인생을 바쳤던 듯했기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 화가의 그림만 알았지, 그의 사생활은 잘 모르고 있었다. 일단, 보면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정말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대신에 엄마 쪽은 영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평생 제대로 가족을 꾸리는 삶과는 거리를 두었다. 하녀랑 거시기는 하지만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고 두 남편을 잃은 부인과의 동거 생활은 그나마 서로 진심으로 사랑했다.

 

 

영화는 당혹스러울 만큼 딱히 어떤 관점이나 이야기를 추구하지 않는다. 카메라 워크를 보면, 때때로 다큐 같은 느낌을 주고 드물지만 가끔은 감시 카메라처럼 그냥 세워 놓고 찍은 것도 보인다. 그만큼 어떤 감동이나 어떤 감정을 유도하려는 시도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삶을 그저 삶으로 그려 보여준다. 딱히 미화하지 않았다.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일상의 배경이다. 정말 아름답다. 때론 숭고하다. 그림 같은 장면들, 그리고 그런 장면들에 조화롭게 배치된 사람과 사물과 가구와 건축물이다.

 

터너가 살던 시기, 그러니까 그의 인생 후반기에 이제 막 사진이 나왔다. 당시 사진기는 흑백이었고 대개들 초상화용 사진을 찍었는데 오랜 시간 가만 있어야 했다. 특히 눈동자를 움직이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옛날 사진들 속 사람들 표정이 엄숙하고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찍힌 것이다. 영화에서는 목을 받치고 고정시키는 장치까지 보여준다. 움직이면 안 되는 거다.

 

사진의 발명은 그림의 퇴장, 정확히는 화가의 퇴장을 의미했다. 이제 사물을 정확히 그려내는 일은 사람보다 기계인 사진기가 간편하게 빠르게 해내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기계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우리가 빛을 볼 때의 그 영상 느낌이다. 윌리엄 터너는 이를 해낸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진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예술 작품을 남겼다.

 

영화에서 터너는 스케치를 틈만 나면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그가 남긴 스케치는 워낙 많아서 1만 9천 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거의 평생 그림 그리는 데 열중한 삶이었다. 영화 후반부에 죽은 시체를 스케치하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만큼 그는 그리는 본능을 죽을 때까지 유지했고 주변에서 뭐든 그리고 싶은 거면 다 그려냈다.

 

터너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비싸게 특정 개인에게 파는 대신에 국가에 기증하고 잘 전시되어 일반 대중들한테 보여지길 원했다. 그리고 그의 결정을 옳았다. 그는 영국의 위대한 화가이며 그의 작품은 국가에서 잘 보전해 주고 있으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상영 시간이 2시간 30분이나 되지만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다 봤다. 딱히 대단한 이야기를 담은 것도 아니고 그저 그림 열심히 그리는 사람의 삶을 보고만 있는 것인데 재미있었다. 인상적인 감정의 순간을 점을 찍듯 꾹꾹 연출해서 보여주는데, 인상적이었다. 뜨거운 감동보다는 차가운 감상을 주는 영화다. 추천한다.

Posted by 러브굿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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