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레터] 잊혀짐과 되새김의 교차점

러브레터
이와이 슈운지 감독
토요카와 에츠시 출연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일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일 거예요. 그것도 갑자기요. 그 사람과의 기억을 차츰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죠. 사랑의 기억은 그 사람이 죽어도 좀처럼 잊기 어려운 일이니까요.

영화는 황당한 일에서 시작합니다. 죽은 사람한테서 답장이 왔습니다. 히로코가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왔습니다. 등산하다가 죽은 옛 애인 이츠키의 옛 주소에서 답장이 왔습니다. 히로코는 천국에서 온 편지라고 믿고 싶어합니다. 반면, 히로코의 현재 애인은 현실적으로 접근해서 마침내 그 편지의 정체를 알아냅니다. 옛 애인과 같은 이름, 여자 이츠키가 답장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두 사람의 추억이 흐릅니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잊어야 하는, 히로코의 아픔. 잊혀진 사랑의 추억을 되살리는 이츠키의 기쁨. 이와이 슈운지 감독은 이 미묘한 희비 곡선을 절묘하게 엮어서 감동을 만들어 냅니다.

히로코는 이츠키에게 애인과의 옛 추억을 되살려 자신한테 편지로 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에서, 이츠키는 필연적으로 책이라는 매체와 밀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책은 과거의 기억이기 때문이죠. 이츠키의 직업이 도서관 사서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건 필연이죠. 영화 마지막에 여자 이츠키가 남자 이츠키의 사랑을 확인하는 매체도 책입니다.

영화는 관객을 사랑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초대합니다. 학생 시절의 여러 재미있는 일화들. 영어 시험 답안지가 바뀐다든지. 자전거를 타다가 봉투를 씌워 골탕 먹이는 장면 같은 거죠. 여자분들은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남자는 정작 마음에 드는 여자한테 감정 표현이 서툰 편이라는 걸. 괜히 괴롭히죠. 옛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세요. 혹시 아무 이유도 없이 당신을 골탕먹이기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지.

옛 사랑을 회상하는 기억의 교차점에 삶과 죽음의 교차점이 맞물려 있습니다. 여자 이츠키는 아빠처럼 폐렴에 걸려 죽을 뻔하게 되는 바로 그때, 히로코는 옛 애인이 죽은 산을 찾아갑니다. 최고 정점은 바로 이 교차점입니다.

산에 대고 죽은 애인을 부르는 이츠키.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요." 바로 그때, 병실에 누운 이츠키도 같은 말을 합니다. 이 말이 산에 메아리치는 그 공간만큼 히로코의 아픔은 크죠. 이 대사는 일본어로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일본어가 더 익숙하죠. "오겡끼 데스까? 와타시와 오겡끼 데스." 이는 편지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흔한 인사말인데, 어마어마한 감정의 증폭을 일으킵니다. 지금은 없는 존재에 대한 사랑을 애타게 부르는 말이 되었기에 그렇습니다.

 



히로코는 드디어 옛 애인의 기억을 잊습니다. 히로코는 이츠키한테 그동안 주고받았던 편지를 모두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이것은 모두 당신의 기억입니다."라고 씁니다. 영화 마지막, 이츠키는 자신의 첫사랑을 확신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자기 대신 반납해 달라던 그 책의 대출표에는 남자 이츠키의 사랑이 그려져 있었죠. 누군가는 그 사랑을 잊지만 누군가는 그 사랑을 되새깁니다.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기쁨과 아픔. 이 영화는 우리들에게 사랑 이야기 이상으로 기억됩니다.

Posted by 러브굿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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