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천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연인

시네마 천국 감독판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안토넬라 안틸리 출연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공부는 안 되고, 무심코 TV를 켜니까 SBS에서 [시네마 천국]을 하길래 봤다. 거의 영화 후반부였다. 울었다. 이 영화는 언제나 끝부분에서 사람 울린다. 내가 울어 본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이군.

이 영화가 국내 TV에서 처음 방영할 때 삭제되었던 그 장면(두 연인이 재회하는 장면)을 멀뚱하게 바라보면서,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있냐, 심드렁한 내 모습에 심드렁했다.

 



먼지가 자욱하게 쌓인 극장 영사실에서, 그 옛날 여자가 자신에게 남겼던 그 쪽지를 찾기 위해 미친듯이 종이 뭉치를 뜯어내는 토토. 마침내 그 과거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그 쪽지를 조심스레 먼지를 털어서 천천히 읽는다. 그 장면에서 밀려드는 허무감은 고통이다.

사람들은 허무와 절망은 피하고 싶어한다. 나도 그렇다. 그런 걸 애써 시간 내고 돈 내고 본 영화에서 보고 싶지 않다. 나도 그렇다. 차라리 그 삭제되었던 장면을 영원히 삭제했더라면, 이 영화의 끝은 그저 콧끝 찡한 아름다운 영화가 되었으리라. 엘레나를 닮은 젊은 여자가 극장이 폭삭 붕괴되는 걸 보고 웃는 장면에서 입 안 가득 퍼지는 쓴 맛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쓴 맛을 보고 싶지 않은 분은 비디오 빌릴 때 [시네마 천국]을, 쓴 맛을 보고 싶으면 [신 시네마 천국]을 선택하시오. [신 시네마 천국]은 18세 이상 이용가라고 해 놓았는데, 30세 이상 이용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에 빠져 살면서도 정확히 현실을 직시한 극장 영사기사 알프레도. 토토를 감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자신의 욕심 때문이었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영화라는 게 영화다운 사건 전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둘이 헤어져야만 하는 영화 서사 구조상, 알프레도는 최선을 다해 그 둘을 떼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 이렇게 쓰고 나니까 우울이 좀 가시는군.

2003. 5. 8.

Posted by 러브굿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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