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The Legend of 1900'

- 감동과 당혹 사이에서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다. 시네마 천국에서 보여준 스타일을 반복할 뿐, 딱히 새로움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여전히 그만의 감성과 이야기 방식은 매력이 있다.

 

영화에 대한 평가/감상이 극과 극인 경우가 그리 흔한 편이 아니다. 이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The Legend of 1900' 그렇다. 중간이 없다.

 

과거 회상의 감수성과 허구의 유혹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나아가는 이야기는, 몇몇은 황당하기는 하지만 픽션이라는 틀거리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순항한다.

 

영화는 스토리텔링으로 흐른다. 트럼펫 연주자의 회상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개된다.

 

여러 일화는 재미있다. 그리고 인상적이다. 해당 장면들이 유튜브에 편집되어서 올려져 있는 걸 보면 관객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피아노 연주 대결.

 

피아노 배틀 혹은 대결을 다룬 영화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 피아노 대결에서, 예술에 대한 견해를 볼 수 있다.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자랑하기 위해 하는 사람과 예술을 그런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는 사람을 대비시킨다. 물론, 가열된 피아노줄에 담뱃불 붙이는 건 과장이 심해 보이지만 이야기의 픽션 논리로는 통쾌한 즐거움을 준다.

 

주인공 1900은 대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첫째 판에는 피아노 초심자도 칠 수 있는 간단하고 흔한 곡을 친다. 바로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간단해서 웬만한 사람은 다 칠 수 있다.

 

둘째 판에서도 대결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도전자가 친 곡을 그대로 따라친다. 이는 상대방의 예술(음악 연주)에 대한 경의를 표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자신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알려준 것이다. 단 한 번 듣고 그대로 따라칠 수 있는 가공할, 모차르트 같은 천재인 것이다. 하지만 관중들은 같은 곡을 쳤다고 야유할 뿐이다.

 

셋째 판. 화가 난 도전자는 치기 어렵고 빠른 곡을 친다. 이번에는 절대로 나를 따라할 수 없을 거라는 투로 말이다. 이를 알아들은 1900은 친구한테 담배 한 가치를 달라고 한다. 1900은 비흡연자다. 자기가 담배 피우려고 달라는 게 아니다.

 

1900은 상대의 재스처를 그대로 따라한 후 상대보다 더 빠르게 더 어려운 곡을 쳐낸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달구어진 피아노 줄에 담뱃불을 붙여서 도전자의 입에 끼워 준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무협지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통쾌하지 않은가.

 

 

예술지상주의 혹은 관객을 당혹스럽게 하는 장면은 중후반부에 나온다.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기도 하다.

 

레코드 녹음 연주 중에, 첫눈에 반한 여자를 만난다. 엄청나게 로맨틱하면서도 기이한 것이, 1900은 여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며 그 감정을 피아노로 연주하지만 정작 여자는 그런 이 남자를 보지 못한다.

 

사랑을 위해서 음악을 바칠 수 있을까? 영화의 대답은 놀랍고도 당혹스럽게도 NO다.

 

1900이 소심한 남자라서 그런 것일까? 녹음한 음반을 가지고 그 여자에게 다가가는 1900은 지난 번에 만난 그녀의 아버지 얘기로 간신히 말을 걸고 뺨에 키스까지 받는다. 음반을 주려고 했는데 음반은 끝내 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주소는 알아낸다.

 

드디어 배에서 내리겠다고 선언하고 이상한 소리를 친구한테 한다. 바다의 목소리. The voice of the sea. The voice. 광기, 혹은 천재성, 예술의 영감을 뜻하는 것 같다.

 

육지에서 평범한 일상적인 삶을 살 것 같았던 1900은 상륙하는 계단 중간까지 가다가 뒤돌아 다시 배로 되돌아간다.

 

배에서 태어나서 배에서 죽겠다는 주인공. 죽음을 앞두고 친구한테 농담을 한다.

 

이 괴상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다. 그저 꾸며낸 이야기일 뿐?

 

영화는 끝까지 누가 왜 어떻게 그 부셔진 레코드를 피아노 안에 넣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옥의 티? 그냥 별 신경 안 쓴 듯.

 

Posted by 러브굿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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